벼랑 끝에 선 한국 축구, 울산의 추락과 월드컵을 향한 불안한 시선
1 min read
국내 프로축구판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울산 HD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최근 10경기 무승이라는 끔찍한 부진의 늪에 빠진 울산은 김판곤 감독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1일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7월 지휘봉을 잡아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만 해도 탄탄대로가 열린 듯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K리그1과 클럽월드컵, 코리아컵을 통틀어 3무 7패라는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는 과거의 영광도 힘을 쓰지 못했다. 팬들의 의구심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고, 구단 역시 침체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이별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2일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수원FC전이 김 감독의 쓸쓸한 고별전이 될 예정인 가운데, 지난 10년간 구단 살림을 도맡아온 김광국 대표이사마저 사의를 표명하면서 울산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상태에 빠졌다. 현재 후임 사령탑으로는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이 강력하게 거론되며 분위기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 리그가 이토록 어수선한 가운데, 국가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 역시 암울하기는 매한가지다. 멕시코, 체코, 남아공과 맞붙을 월드컵 본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기대감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게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예선을 통과하긴 했으나 지난 3월 코트디부아르에 0-4로 참패하고 오스트리아에 1-0으로 덜미를 잡히면서 대표팀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바닥까지 떨어진 기대치가 마냥 독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선수들이나 홍명보 감독 모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얼마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지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을 테니 근거 없는 자만심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실제로 월드컵을 향한 준비 과정 자체는 꽤나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표팀은 당장 월요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넘어가 본격적인 담금질에 들어간다. 조별리그 A조 첫 두 경기가 해발 1,600미터 고지대인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리는 만큼, 고지대 환경 적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산소가 부족해 회복이 더디고 탈수 증세가 빨리 찾아오는 가혹한 환경을 대비해 한 달 가까이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합숙하는 일정이다. 오랜 합숙 탓에 선수들이 심리적 피로감이나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체력적 완성도 면에서는 확실한 메리트가 있다. 만약 한국이 토너먼트 깊숙한 곳까지 살아남아 다시 고지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 징글징글한 고지대 캠프가 분명 빛을 발할 것이다.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평가전 파트너로는 트리니다드토바고(5월 30일)와 엘살바도르(나흘 뒤)가 낙점됐다. 피파랭킹 100위권 밖인 이들을 두고 왜 하필 이렇게 약한 상대만 고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강팀에게 크게 깨질까 봐 몸을 사린다는 지적인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직전 가나에게 0-4로 박살이 나며 대회 내내 팀 분위기가 나락으로 갔던 뼈아픈 기억을 떠올려보면 코치진의 선택이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당시의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한 상황에서, 지금 대표팀의 유리 멘탈로는 연승을 통해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바이브를 끌어올려야 할 필요성이 크다. 물론 이 전략에는 치명적인 덫이 숨어 있다. 브라질 같은 강호에게 지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한참 아래로 평가받는 엘살바도르에게 발목을 잡힌다면 그날로 대표팀은 월드컵 시작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결국 가장 큰 변수는 얇아진 스쿼드와 부상 리스크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렸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황인범의 발목 부상이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소속팀 페예노르트에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그는 손흥민이나 이강인, 김민재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닐지 몰라도 중원에서 대표팀의 템포를 조율하는 대체 불가한 심장이다. 홍명보 감독 역시 “솔직히 걱정된다. 팀의 핵심인데 지금은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타는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플랜 B를 고심하며 그의 회복 속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지만, 황인범이 빠진 중원이 멕시코의 고산지대에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승팀 울산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첩첩산중인 국가대표팀, 다가오는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직면한 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