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5월 2026

에이징 커브의 서늘한 그림자, 고지대서 멈춰선 손흥민과 710억 ‘나잇값’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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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톨루카의 네메시오 디에스 경기장을 감싼 해발 2,670m의 희박한 공기는 자비가 없었다. 7일(한국시간) 열린 2026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컵 준결승 2차전에서 LAFC는 톨루카에 0-4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1차전의 2-1 승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합산 스코어 2-5로 탈락하며 새로운 무대에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려던 손흥민의 야심도 산산조각 났다. 북중미에서 손꼽히는 지옥의 원정길이라곤 하나, 산소 농도 저하와 극심한 체력 소모가 동반되는 극한의 환경은 선수들의 발목을 무겁게 짓눌렀다.

경기 내용은 스코어보드보다 훨씬 암울했다. 점유율 36%, 슈팅 수 31대 5, 유효 슈팅 15대 1. LAFC는 90분 내내 철저히 농락당한 샌드백 신세였다. 톨루카가 90%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5번의 빅찬스 중 4골을 욱여넣는 동안, 고산지대에 적응하지 못한 LAFC 선수들은 73%의 패스 성공률에 허덕이며 피치 위를 걷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후반 41분 라이언 홀링스헤드가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면서 팀의 멘탈은 완전히 붕괴됐고, 추가시간에만 파울리뉴에게 두 골을 내리 헌납하며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철저히 지워진 손흥민의 존재감이다. 이날 그는 단 한 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상대 박스 안 터치는 0회였고, 슈팅의 궤적이나 스피드에 변수를 주는 고지대의 특성을 시험해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두 번의 키패스로 빅찬스를 하나 창출하긴 했지만, 박스 안에서 성공시킨 패스는 고작 3개에 불과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공간 쇄도나 폭발력은 완전히 실종된 상태였다. 1번의 드리블 성공(성공률 33%), 공중볼 경합 성공률 0%(0/2), 지상 경합 성공 2회(50%)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축구 통계 매체 사커웨이로부터 팀 내 최하위권인 평점 5.9점을 부여받았다.

확연히 떨어진 활동량과 반토막 난 영향력을 보고 있자면, 몇 년 전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던 시절 발표됐던 한 통계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절정의 폼을 과시하던 2022년 즈음,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는 그의 이적 시장 가치를 5290만 유로(약 710억 원)로 책정하며 세계 88위에 랭크했었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유일한 톱 100 진입이었지만, 공격수 부문 33위라는 수치는 당시 그의 체감 위상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팀 동료인 해리 케인은 물론이고 데얀 클루셉스키, 크리스티안 로메로 심지어 피에르 에밀 호이비에르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았으니 팬들 입장에선 노골적인 ‘후려치기’로 느껴질 법했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CIES의 알고리즘은 현재의 화려함보다 철저히 미래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선수의 가치를 산정할 때 계약 기간, 국제적 위상, 구단의 경제적 수준 등 수많은 변수가 개입하지만 결국 가장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잣대는 ‘나이’다. 당시 100위권 내에 손흥민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최고령이었던 케빈 더 브라위너(76위)를 포함해 단 4명뿐이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같은 이른바 ‘축신’들조차 가차 없이 순위표에서 지워버린 게 이 시장의 생리다.

반면 그 빈자리는 장차 세계 축구를 삼분할 킬리안 음바페(약 2763억 원),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엘링 홀란드 같은 20대 초반의 괴물들이 최상위권을 싹쓸이하며 채웠다. 여기에 페드리, 주드 벨링엄, 필 포든 등 무서운 10대와 20대 초반의 샛별들이 수백억의 몸값을 자랑했고, 잔루이지 돈나룸마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같은 젊은 피들이 각 포지션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이었던 무함마드 살라가 80위에 턱걸이하고 네이마르는 아예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현상 역시 이 냉혹한 나이 변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결국 이적시장에서 매기는 몸값이란 지금 당장 얼마나 골망을 잘 흔드느냐의 지표라기보다, 앞으로 이 선수의 물리적 에너지를 얼마나 더 뽑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영수증인 셈이다. 해발 2,670m의 희박한 산소와 싸우며 무기력하게 피치를 누비던 손흥민의 모습은, 어쩌면 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돌려가며 이적시장이 경고했던 ‘에이징 커브’의 서늘한 실체일지도 모른다. 710억이라는 숫자에 묻어있던 나잇값의 페널티가 멕시코의 낯선 고산지대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씁쓸한 형태로 증명되고 있는 지금, 영원할 것 같던 월드클래스의 질주도 시간이라는 가장 무거운 수비수를 온전히 떨쳐낼 수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