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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인생도 축구와 마찬가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최민솔 기자 | 승인 2019.05.19 19:00
▲ KBS '대화의 희열2'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본 박항서 감독 / 사진: KBS 제공

[베프리포트=최민솔 기자]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자신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봤다.

지난 18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2’에서는 '휘슬이 울릴 때'라는 주제 아래, 축구감독 박항서와의 대화가 펼쳐졌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와 함께했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남들보다 늦게 축구를 시작한 박항서 감독은 선수시절, 남들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였다. “저는 정말 축구에 소질이 없었다”고 밝힌 박항서 감독은 열악한 신체조건을 뛰어넘기 위해 지구력을 키웠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1983년 럭키금성에서 프로 데뷔를 한 박항서는 ‘독종 배터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활약을 펼쳤다. 이후 만 29세에 은퇴 선언을 하며 축구선수로서의 전반전을 마쳤다.

이후 지도자가 된 박항서 감독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2002년 국가대표 수석코치로 월드컵 4강 신화의 영광을 함께한 박항서 감독은 그 뒤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발탁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계약서 없이 감독 계약을 하려는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었고, 히딩크 감독의 벤치 착석 문제, 무보수 감독직 성명서 논란 등이 연이어 터졌다. 결국 박항서 감독은 취임 3개월 만에 경질이 됐다.

축구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던 박항서. 이후 다시 K리그 감독이 되어 필드로 돌아왔지만, 2011년 K리그를 휩쓴 ‘승부조작 사건’이라는 커다란 파도를 만나게 됐다.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었던 박항서는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이 된 후였다. 박항서 감독은 믿었던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박항서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불운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박항서는 공황장애까지 겪을 정도로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박항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은 “우리가 살면서 딱 ‘STOP’되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멈춰야만 비로소 앞뒤를 살 필 수 있으니까"라는 인생의 교훈을 이야기했다.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직. 박항서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1년만 버티자”라고 각오를 품은 채 베트남으로 향했다고. 그는 말이 안 통하는 베트남 선수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른바 ‘파파 리더십’을 선보이며 수많은 기적을 일궈냈다.

끝으로 박항서 감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삶의 깨달음을 전했다. 박항서 감독은 “인생을 축구라고 가정하면, 10분 동안 재역전을 당할지 모른다. 끝까지 그라운드를 달리는 게 중요하다. 어디선가 또다시 축구로 나를 찾아준다면 언제든지 좋다. 축구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여전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최민솔 기자  solsol@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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