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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원의 러닝타임] 위대한 풋볼
정일원 기자 | 승인 2018.07.20 15:15

러닝타임(running time) :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길이를 시간으로 나타낸 단위.
축구 : 11명의 ‘뜀박질’이 만드는 한 편의 영화 혹은 일련의 드라마. [편집자 주]

* 영화[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2017)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웸블리 스타디움의 아치 구조물(위)과 위대한 쇼맨(2017) 예고편 갈무리 / ⓒ 웸블리 스타디움, 20세기 폭스 코리아

[위대한 쇼맨]은 ‘쇼 비즈니스’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1810~1891)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 영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바넘(휴 잭맨 분)은 실직 후 진귀한 골동품들을 수집해 ‘바넘의 호기심 박물관’을 열지만 벌이가 시원찮다. 그래서 바넘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는데, 이를테면 노래를 잘하는 수염 난 여자 레터(케알라 세틀 분), 왜소증 청년 톰(샘 험프리 분)같은 ‘별난’ 사람들이다. 바넘은 이들을 한데 모아 서커스단을 꾸리고, 공연은 연신 성황을 이룬다.

바넘의 공연은 상류층과 평론가로부터 ‘저속한 돈벌이’로 치부된다. 세간의 비난과 미천한 신분에서 비롯된 열등감은 바넘을 상류층 연극계 총아 필립 칼라일(잭 에프론 분) 앞으로 인도한다. 칼라일과 동업을 시작한 바넘은 당시 유럽 최고의 소프라노로 명성을 떨친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분)를 자신의 ‘쇼’에 세운다. 오페라 가수 린드의 노래에 심취한 상류층은 그제야 바넘의 ‘공연’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격’의 상승을 위해 고급문화의 힘을 빌린 사례는 축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 국제축구연맹(FIFA)은 로마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에서 ‘3명의 테너(The Three Tenors) 콘서트’를 선보인다. 세계 3대 테너라 손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장에서 ‘오 솔레 미오(O Sole Mio)’,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네순 도르마-Nessun Dorma)’등을 열창했다. 6,500명의 관중과 1,000만 명에 달한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이 격조 높은 공연은 실황 음반으로 제작돼 1,0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성원에 힘입은 ’3명의 테너 콘서트‘는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까지 계속됐다.

▲ 3명의 테너(위)와 챔피언스리그 경기 전 도열한 선수들, 3명의 테너 콘서트는 1988년 이탈리아 프로듀서인 마리오 드라디에 의해 처음 기획됐다. 당시 호세 카레라스가 세운 백혈병 재단의 기부를 명분으로 3명의 테너가 처음으로 뭉쳤다. / 사진: ⓒ DECCA 레코드, 영국 포포투

FIFA의 ‘3명의 테너 콘서트’에 영감을 받은 유럽축구연맹(UEFA)은 1992년 유러피언컵을 ‘챔피언스리그’로 개편한 뒤, 대회의 공식 주제가를 클래식을 활용해 제작한다. 지금은 유럽축구의 상징이 된 챔피언스리그의 주제가 ‘Ligue des champions(프랑스어로 챔피언스리그를 뜻함)’는 음악가 헨델이 1727년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만든 ‘대관식 찬가(Coronation Anthem)’의 도입부 ‘신부 사독(Zadok the Priest, HWV 258)’을 작곡가 토니 브리튼이 편곡한 것이다. 원곡의 웅장함을 그대로 머금은 챔피언스리그 주제가를 들으며 경기장에 도열한 선수들은 흡사 대관식에 참석한 왕족들을, 경기장을 메운 관중은 성스러운 행사에 초대된 귀빈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위대한 쇼맨]에서 바넘은 린드의 노래를 감상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자신의 ‘별난’ 단원들에게 ‘눈에 잘 띄는’ 박스석 대신 ‘음향이 잘 들린다’는 입석을 내준다. 상류층의 시선을 의식한 바넘은 공연 후 리셉션에 ‘출몰한’ 단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손수 닫아버린다. 성공에 도취된 바넘은 린드와 순회공연을 떠나고, 자연스레 단원들을 멀리한다. 바넘의 순회공연장은 그가 동경해 마지않는 상류층으로 그득 차지만, 높아진 격은 바넘의 공연장을 채웠던 서민들과 단원들에게 커다란 ‘벽’으로 느껴진다.

▲ 제니 린드의 공연을 보고 열광하는 관객들 / 사진: 위대한 쇼맨 공식 예고편 갈무리, ⓒ 20세기 폭스 코리아

세계 최고의 쇼 비즈니스로 격이 높아진 축구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소외’가 자행되고 있다. 축구종가 영국에서 축구는 이제 중·상류층을 위한 문화로 ‘승격’된지 오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경기장 입장료와 페이퍼뷰(pay-per-view·유료 시청)는 노동자들이 경기장과 집에서 축구를 보지 못하는 ‘주객전도’ 현상을 초래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펍(public house·PUB)에 옹기종기 모여 TV에 담긴 축구를 들이켠다. 한잔의 여유도 없으면 이마저도 언감생심이다. 노동자의 발로 생산한 축구가 노동자의 눈에서 소비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세태다.

▲ 2016년 2월, 슈투트가르트전에서 비싼 티켓 가격에 항의하기 위해 피치에 테니스 공을 투척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팬들. 그들의 피켓에는 '너네의 가격, 거대한 테니스(Eure Preice, Grosses Tennis)', '축구는 지불 가능해야만 한다(Fussball muss bezahlbar sein)'가 쓰여 있었다. / 사진: 유튜브 갈무리

애초에 자본가의 주머니에서 태동한 축구를, 유료 시청이 보편화되지 않은 땅에서 원하는 대로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은 ‘축구로부터의 소외’라는 개념조차 굉장히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신사계급과의 오랜 투쟁 끝에 축구를 쟁취한 이들에게는, 런던 울리치 소재 무기제조공장 로열 아스널(Royal Arsenal)의 노동자 축구팀이 어느 팀의 전신(前身)인지를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사는 이들에게는 축구로부터의 소외가 단순히 오락거리의 상실을 넘어선 삶의 ‘쇠락’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서커스 단원들을 외면한 바넘은 극장까지 홀랑 불에 타버리면서 쫄딱 망하지만, 버려진 바넘의 단원들은 “당신은 부모조차 숨겼던 우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존재”라며 바넘에게 손을 내민다. 결국 바넘은 단원들과 함께 재기에 성공하고, 잃었던 아내의 사랑도 되찾는다.

▲ 바넘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서커스 단원들이 파티장에 들어오자 술렁이는 상류층들 / 사진: 위대한 쇼맨 공식 예고편 갈무리, ⓒ 20세기 폭스 코리아

[위대한 쇼맨]에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고 사랑에 빠진 칼라일과 앤 휠러(젠다야 콜맨 분)는 ‘Rewrite The Stars’를 노래하며 “Nothing could keep us apart(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 리셉션에서 쫓겨난 바넘 서커스 단원들은 ‘This Is Me’를 열창하며 “We are bursting through the barricades and reach above the sun(우리는 바리케이드를 부숴버리고 태양까지 닿을 거야)"라고 부르짖는다.

축구장에서 쫓겨났지만,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는 ‘그들’도 쭉 그럴 것이다. ‘지상 최대의 쇼’인 ‘위대한 풋볼’이 계속되는 한 그 무엇도 그들과 축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어떤 장애물도 축구장으로 향하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일원 기자  1one@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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