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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원의 러닝타임] ‘모든 증오가 끝나는 곳’ 몬태나(Montana)와 코리아(Corea)
정일원 기자 | 승인 2018.04.18 17:41

러닝타임(running time) :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길이를 시간으로 나타낸 단위.
축구 : 11명의 ‘뜀박질’이 만드는 한 편의 영화 혹은 일련의 드라마. [편집자 주]

* 영화 [몬태나(Hostiles)](2018)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몬태나] 스틸컷, 한국정책방송원

조셉 블로커(크리스찬 베일 분)는 수년간 서로의 목에 총과 칼을 겨눴던 옐로우 호크(웨스 스투디 분)를 그의 고향인 ‘몬태나’로 무사히 호송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다. 군인으로서 마지막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임무를 받아들인 조셉 블로커 대위는 자신의 동료들을 수없이 죽인 원주민 추장과 ‘불편한’ 동행을 시작한다. 주둔지를 나설 때는 옐로우 호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만, 몬태나를 향한 1,000마일의 여정 끝에서 조셉 블로커는 죽음을 앞둔 옐로우 호크를 ‘친구’라 칭하며 손을 맞잡는다.

영화 [몬태나]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개척자’를 미화하는 전형적 서부영화와는 다른 결말을 택한다. 원주민의 손에 가족이 몰살당한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 분)가 홀로 남은 옐로우 호크의 손녀를 거두고, 이들이 탄 열차에 조셉 블로커가 끝내 몸을 싣는 엔딩은 미국의 서부영화가 더 이상 개척시대의 과오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사죄와 반성, 화합과 책임을 보여주는 장르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영화만큼이나 스포츠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과거 냉전시대 공산권 국가들은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메달에 목을 맸다. 6·25 전쟁 이후 한국과 북한은 축구에서 열띤 신경전을 벌였는데,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이어 1956년, 1960년 아시안컵 2연패를 달성했지만 1960년대 들어 철저히 북한에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앞두고 A매치 전적 17승 1무를 기록하며 극강의 전력을 과시했다. 결국 한국은 월드컵에서 북한에 패할 것을 염려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경고와 벌금(5,000달러)을 무릅쓰고 잉글랜드 월드컵에 불참했다. 반면 북한은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 사진: [몬태나] 스틸컷

[몬태나]의 이야기처럼, 국가의 명령에 따른 ‘불편한’ 동행이 한국 축구계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있다. 때는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 전신)에서 한국과 북한은 한반도기를 앞세운 단일팀을 구축했다. 당시 단일팀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던 최익형 현 아산무궁화 코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일팀 기간 중 첫 한 달은 굉장히 서먹서먹했다. 북한 선수들과 친해지려다 우리 측 동료가 김일성을 언급했다가 멱살까지 잡힌 적도 있다. 분위기가 좋아진 건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후부터다. 서로 끌어안고 아리랑을 불렀다”고 밝혔다. 실제 남북 단일팀 선수들은 식사나 훈련시간을 제외하면 왕래가 금지되었을 정도로 경직된 분위기에서 대회를 치렀다.

남북 단일팀은 대회 한 달 전부터 남북 선수 36명이 참가한 선발전을 거쳐 정예 18명을 추려냈고,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비록 브라질에 1-5로 패했지만, 6·25전쟁 이후 첨예하게 대립했던 남과 북이 축구계에서 연출한 화합은 이후 남북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이라는 쾌거를 이룬 남북단일 코리아팀 / 사진: 한국정책방송원

[몬태나]의 감독 스콧 쿠퍼는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원주민들이 받은 학대가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색인종을 향한 인종차별과 문화적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몬태나]는 아주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과 분열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대가 반영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TV와 구분되는 영화만의 미학을 찾기 위해 감독의 주관과 개성을 강조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선봉자 장 뤽 고다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화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영화에 정치적인 내용을 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스스로 다양한 정치·사회적 담론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주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넘쳐흐르는 오락거리들 속에서 스포츠만이 가질 수 있는 미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팀을 나눠 승패를 가르는 것에서 오는 유희를 넘어 다양한 삶의 가치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서 남북 단일팀을 이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전 세계에 강렬한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스포츠가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단적인 예다.

▲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북단일 코리아팀의 남측 선수들이 판문점을 통해 귀경하는 모습 / 사진: 한국정책방송원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축구대표팀을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하자는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영화 [몬태나]의 원제는 ‘Hostiles’. ‘Hostile’의 사전적 정의는 ‘적대적인·적의’이다. 한국에서는 조셉 블로커와 옐로우 호크가 손을 맞잡은 ‘몬태나’를 영화의 제목으로 선정했다. 개봉이 4개월 남은 아시안게임에는 어떠한 부제가 붙을까. ‘적의를 품은’ 남한과 북한? 아니면 ‘손을 맞잡은’ 코리아(Corea)?

▲ [몬태나]의 국문 포스터와 영문 포스터

정일원 기자  1one@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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