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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원의 러닝타임] 비가 오면 생각나는 두 사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정일원 기자 | 승인 2018.03.20 18:20

러닝타임(running time) :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길이를 시간으로 나타낸 단위.
축구 : 11명의 ‘뜀박질’이 만드는 한 편의 영화 혹은 일련의 드라마. [편집자 주]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7)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비가 오면 생각나는 두 사람, 손예진과 프리츠 발터 / 사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컷, alchetron.com 갈무리

# 멜로의 대가

‘멜로의 대가’가 비를 타고 돌아왔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을 통해 만인의 사랑으로 거듭난 손예진이 동명의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또 한 번 손예진표 멜로를 선보인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우진(소지섭 분)의 남편 수아로 분한 손예진은 아들 지호(김지환 분)에게 엄마펭귄과 아기펭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다. 내용인 즉, 죽은 엄마펭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구름나라에서 아기펭귄을 지켜보다가 비가 내리는 날 다시 땅으로 내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책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는 수아의 아들 지호는 하루빨리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며 한여름 뙤약볕에도 우비를 입고 학교에 간다.

비는 기적이 되어 내린다. 정말로 죽은 수아가 비 오는 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진과 지호는 가족과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수아를 예전처럼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로 품으며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비가 그친 날, 수아는 동화 속 엄마펭귄처럼 구름나라로 돌아간다.

▲ [클래식]의 명장면 / 사진: [클래식] 스틸컷

멜로·로맨스 장르에서 ‘비’는 사랑과 이별을 암시하는 장치다. 빗속에서 사랑이 더 깊어지거나, 비가 내린 후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거나. 손예진이 직접 자신의 멜로 대표작이라고 꼽은 [클래식]의 명장면은 비 오는 날 지혜(손예진 분)와 상민(조인성 분)이 겉옷을 우산 삼아 캠퍼스를 질주하는 신이다. 둘 다 몸이 홀딱 젖는데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얼굴엔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은은히 깔리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까지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보는 이의 마음도 풋풋함으로 물든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다시 만난 수아와 우진이 첫 키스를 나누는 순간에도 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손예진 표 멜로에 비는 없어서는 안 될 ‘명품 조연’이다.

# 수중전의 대가

축구에서도 비는 기적을 몰고 온다. 야구 등과 달리 비가 어지간히 많이 내려도 축구는 계속된다. 빗속에서 펼쳐지는 ‘수중전’은 축구의 또 다른 재미다. 축구공의 속도와 방향이 빗물과의 마찰력으로 인해 걷잡을 수가 없다. 선수들이 패스의 강도와 방향을 조절하는데 적잖이 애를 먹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 엉켜 넘어지거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정교한 플레이가 어려우니 수중전에선 절대강자도, 약자도 없다. 아무리 강한 팀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골을 내주거나,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려 패배를 맛보기 일쑤다.

독일축구의 ‘영원한 캡틴’이라 불리는 프리츠 발터는 유독 수중전에 강했다. 1940년 19살의 나이로 서독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발터는 데뷔전에서 루마니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징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발터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히지만 극적으로 귀환해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1950년 서독 대표팀에 복귀한 발터는 주장을 맡으며 팀을 이끌었고, 소속팀 FC 카이저스라우테른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서독 대표팀, 독일 축구계에선 수중전에 강한 프리츠 발터의 이름을 따 비 오는 날씨를 '프리츠 발터의 날씨(Fritz-Walter-Wetter)'라고 불렀다고 한다. / 사진: 영화 [베른의 기적] 스틸컷

“프리츠, 자네가 좋아하는 날씨군.”
“이보다 좋은 날씨는 없죠.”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 서독과 헝가리의 결승전이 펼쳐진 스위스 베른의 방크도르프 슈타디온에 내린 비는 ‘기적’이었다. 1950년대 초반 페렌츠 푸스카스를 앞세운 헝가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무패행진(월드컵 전까지 국제대회 32연승)을 달리며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서독과 헝가리의 결승 대진을 본 대다수 축구팬들은 헝가리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할 것이라 예측했다. 실제 결승전에서 헝가리가 킥오프 6분 만에 푸스카스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고, 2분 뒤 치보르 졸탄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잡는듯했다.

독일에는 ‘캡틴’ 프리츠 발터가 있었다. 수중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온 그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실의에 찬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얼마 후 스위스 베른의 날씨가 본격적으로 ‘프리츠 발터의 날씨(Fritz-Walter-Wetter)’로 변하자, 서독의 선수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반면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헝가리 선수들은 진창이 된 경기장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서독은 막스 몰로크의 만회골과 헬무트 란의 동점골로 2-2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 종료 6분 전 터진 란의 역전골에 힘입어 3-2로 승리해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서독이 넣은 2골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발터는 이후 독일축구의 ‘영원한 캡틴’으로 자리매김했다.

# 리메이크

발터가 이끄는 서독은 스위스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대한민국, 터키, 헝가리와 2조에 편성됐다. 예선 1차전서 터키를 잡은 서독의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은 헝가리와의 2차전서 주전 선수들을 대거 빼고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3-8 대패. 비록 상위 라운드 진출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으나, 5골차 패배는 서독 선수들과 국민들을 절망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터키와의 플레이오프서 승리를 따낸 서독은 8강과 4강서 각각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예선전서 3-8로 박살이 난 헝가리. 모두가 헝가리의 우세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서독의 3-2 역전승. 타이틀은 ‘서독 vs 헝가리’로 같았지만, 결승전에서 서독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 서독의 월드컵 우승에 적잖은 기여를 한 아디다스의 축구화 / 사진: 영화 [베른의 기적] 갈무리

1차전과 다르게 서독의 헤르베르거 감독은 주전 선수들을 모두 투입한 ‘베스트 일레븐’으로 헝가리를 상대했다. 이날은 날씨마저 서독을 도와줬는데, 아침까지 맑았던 베른의 날씨가 갑자기 찌뿌둥하더니 이내 억수같이 비를 뿌렸다. 서독 선수들은 미끄러운 경기장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축구화 바닥의 스터드가 탈·부착이 가능한 최신형 아디다스 축구화까지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최상의 촬영 로케이션과 장비, 주연배우들을 동원한 ‘서독 vs 헝가리’ 리메이크 작품은 비록 2골을 내주는 ‘NG’가 있었지만 ‘비 만난 고기’ 발터와 나머지 선수들의 열연으로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이 됐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메인 포스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비 만난’ 손예진도 자신만의 매력과 연기로 빚어낸 수아를 통해 성공적인 리메이크를 일궈냈다. 지나치게 한국식 유머코드가 삽입된 점 등을 들어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개봉 7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비결은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다수의 멜로작품을 통해 쌓아온 손예진의 ‘멜로 내공’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서독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우승은 오늘날 ‘베른의 기적’으로 회자된다. ‘베른의 기적’이 가져다준 용기는 ‘라인 강의 기적’으로 이어져 전후 피폐해진 독일경제를 신속하게 복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했고, 훗날 독일이 다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나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 멜로·로맨스 작품 역대 최고 흥행작(411만 645명)인 [건축학개론]의 개봉 첫 주 스코어 (71만 6,975명)를 가뿐히 뛰어넘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비 오는 날 시작된 기적’에서 침체된 ‘한국 멜로영화의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요 며칠 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을 보니 어쩌면...

정일원 기자  1one@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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