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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원의 Box to Box] 이(Lee)토록 염(Yeom)원한 월드컵
정일원 기자 | 승인 2017.09.06 16:57
▲ 대한민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이동국, 이근호, 염기훈 / 사진: 전북현대, 강원FC, 수원삼성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인생이라면 축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축구 역시 '우리 편 골대에서 상대 편 골대 사이' 그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체다. [Box to Box]에는 이처럼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주]

신태용호의 ‘러시아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노병(老兵)’의 투혼이었다.

셋이 합쳐 107살인 이동국(39)·염기훈(35)·이근호(33)는 6일 자정(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10차전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셋 중 가장 먼저 피치를 밟은 이근호는 특유의 헌신적인 플레이로 경기장을 분주히 누볐다. 자신의 주 임무인 오른쪽 측면 돌파는 물론, 수비 시에는 우즈벡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아낌없이 몸을 날렸다. 후반 13분 김민우-황희찬과의 연계 플레이 뒤 때린 회심의 오른발 감아차기는 그가 여전히 정상급 공격수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 후반전 교체 투입 후 공격의 물꼬를 튼 염기훈 / ⓒ수원삼성

후반 18분에는 염기훈이 권창훈 대신 투입됐다. 염기훈이 투입되자마자 신경이 죽어있던 왼쪽 날개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염기훈의 날카로운 왼발에 맞은 크로스는 우즈벡 수비들을 적잖이 당황시켰다.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 활로를 뚫자 잠잠했던 김민우까지 덩달아 살아났다. 수원삼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염기훈과 김민우는 후반 내내 한국의 왼쪽 공격을 책임졌다.

후반 33분, 혼을 불사른 이근호의 바통을 이동국이 이어받았다. 지난 이란전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진 이동국은 골을 위해 문전으로 몸을 겨눴다. 후반 40분 김민우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해 크로스바를 때린 이동국은 3분 뒤 황희찬의 스루패스를 받아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경기 결과는 0-0. 이란이 시리아와 2-2로 비기면서 ‘어부지리’로 조 2위를 수성한 한국은 극적으로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됐다. 비참한 경기력부터 ‘미래를 내다본’ 인터뷰(신태용 감독은 이란-시리아전의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본선 진출 자축 인터뷰를 했다.)까지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3명의 베테랑이 보여준 헌신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 '2010' 트라우마

▲ 후반전 교체 투입 후 예리한 유효슈팅으로 분위기 반전을 이끈 이동국 / ⓒ전북현대

사실 이동국·염기훈·이근호의 월드컵에 대한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본선 2차전서 첫 월드컵 경기를 치른 이동국은 이후 2002년, 2006년(십자인대 부상) 월드컵 엔트리에서 연달아 제외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한 2경기 모두 교체로 투입돼 아쉬움을 더했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서 골키퍼와 1:1로 맞닥뜨린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서, 이동국은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다. 얄궂게도, 이번 우즈벡과의 경기에서도 이동국은 골키퍼를 1:1로 마주했지만, 슈팅은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염기훈 역시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르헨티나와의 본선 2차전, 1-2로 한국이 추격하는 상황에서 골키퍼 1:1 찬스를 맞은 염기훈은 주발인 ‘왼발’로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 옆 그물을 때리고 말았다. 각도 상 왼발보다 오른발이 유리한 위치였지만, 염기훈은 자신의 주발인 왼발을 믿었던 것. 이후 염기훈은 일부 축구팬들로부터 달갑잖은 별명을 얻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 공격은 물론, 수비까지 헌신적으로 가담한 이근호 / ⓒ강원FC

가장 억울한 건 경기를 뛰지도 못한 이근호다. 이근호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서 3골을 넣으며 한국을 본선에 올려놨지만, 막판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며 눈물을 삼켰다. 당시 남아공 최종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에 합류한 이근호는 엔트리 탈락 후 대표팀 트레이닝 복을 입고 귀국하는 것이 창피해 급히 면세점에 들러 사복을 구입했다고 한다.(절치부심한 이근호는 2014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전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 노병은 죽지 않는다

‘나가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는 하나, 이동국·염기훈·이근호에게 있어 월드컵은 한편으로 ‘애증’ 그 자체일 터. 선수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본선 엔트리 합류에 대한 욕심이 생길 법하지만, 노장(老將)들은 ‘마지막’을 암시했다.

▲ 통산 10회, 연속 9회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 사진: 아시아축구연맹 공식 소셜미디어 갈무리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짓고 염기훈은 “내가 (박)지성이형, (이)영표형한테 배운 것들을 어린 후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최종예선을 치른 소회를 전했다. 본선 엔트리 합류에 관한 질문엔 “나보다 잘하는 후배들이 많다. 마지막 대표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왔다. 팀에서도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답했다. 이동국 역시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내년 러시아 월드컵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게는 너무 먼 시간이다. 팀에서 꾸준한 경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수많은 문제점이 노출된 월드컵 최종예선이었지만, 그중 팬들의 공분을 샀던 것은 바로 ‘간절함의 결여’였다. 벌써 대표팀에서 은퇴한 선수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팬들의 입가에 맴도는 이유는, 해외파 국내파 가릴 것 없이 서로 한발씩 더 뛰며 투지를 내뿜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發露)일게다. 이동국·염기훈·이근호가 본선 최종 23명 엔트리에 들지 못한다 한들, 그들이 보여준 헌신은 ‘투지’라는 이름의 24번째 선수로 후배들의 가슴속에 등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기에.

정일원 기자  1one@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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